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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두 얼굴(박명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3-17
조회 45694
치매의 두 얼굴
 
박명화 교수(충남대학교 간호대학)
 
세상 모든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돌봄(caregiving)과 연관되어 있다.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 누군가의 돌봄을 받는 사람, 앞으로 누군가를 돌보게 될 사람, 앞으로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을 사람. 누구 한 사람 돌봄(caregiving)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는 셈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돌본다는 역할에 대해서 우리는 그 일이 닥치기 전까지는 미리 생각해 보거나 전문적으로 배운 바가 없고 단순히 상황이 닥치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 역할을 배우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치매환자 가족들의 경우 이러한 역할의 부담이 다른 질병에 비해 크고 예측하기 어려운 힘든 상황에 부딪히게 되는 경우가 많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은 돌봄의 역할을 감당하기에는 그 어려움이 매우 크다. 
 
현장에서 치매가족을 위한 지지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스트레스와 부담으로 인해 어두운 표정의 가족들도 만나지만 의외로 밝은 표정의 환자와 가족들도 만나게 된다. 필자는 같은 상황이지만 왜 서로 다른 반응을 가족들이 보이게 될까 고민하면서 치매의 두 얼굴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하면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 함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치매환자는 항상 돌봄을 받아야 할 대상이고 가족은 항상 돌봄을 주어야 하는 대상인가?
 
많은 경우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 또한 환자 못지않은 고통과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은 심장질환, 요통, 고혈압, 관절염, 소화기질환 등의 신체적 질환을 1가지 이상 앓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미 가지고 있던 신체질환이 악화되기도 하고, 진통제, 항우울제 및 수면제 등의 약물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지기도 한다. 치매환자를 돌봄으로 인한 피로, 정신적 스트레스, 이에 따른 음주, 흡연, 과식 등의 부적응적 대응들은 각종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치매환자 가족을 숨겨진 환자(hidden patient)라고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치매환자에게 주어지는 관심과 돌봄 못지않게 환자를 돌보는 가족에게도 관심과 돌봄이 주어져야 한다. 가족의 삶은 환자를 돌보는 일만 위한 것은 아니다. 환자와 가족 모두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가족은 항상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인가?
 
물론 가족은 환자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도움을 주는 존재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질병 및 환자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고 경험이 부족한 경우 가족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환자 상태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신체적·정신적으로 가족이 지쳐 있거나 우울증 같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치매환자를 방치할 수 있고 환자의 불편감을 무시하거나 환자의 위생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가족이 치매환자를 돌볼 수 있는 역량을 강화시키고 그들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 때 환자에게 그리고 가족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셋째, 치매는 반드시 부정적 결과만 야기하는가?
 
치매가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힘든 경험인 것이 사실이지만 치매로 인해 치매환자와 가족이 항상 부정적인 경험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 가질 수 있는 긍정적 경험과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치매환자를 돌보는 일을 통해 가족이 서로 역할을 나누고 위로함으로써 가족의 결속력이 높아질 수 있다.“이전에는 시누이들과 그다지 왕래가 없었지만 어머님이 치매에 걸리시고 나서 아가씨들이 고생이 많다고 위로해 주고 찾아와서 도와줄 일이 없는 지 물어보곤 해요”(치매 시어른을 돌보는 며느리)
 
●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은 자기 자신이 환자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것과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존중감이 증진될 수 있다. 또한 자녀와 다른 사람에게 롤모델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내가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지금은 돌려 드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내가 이렇게 덕을 쌓으면 우리 자녀들이 나를 통해 효를 배우고 내가 아플 때에도 나에게 잘 할 것이다.”(치매노모를 돌보는 딸)
 
● 자신의 삶과 치매환자의 삶에 대해 통제감을 느끼고 누군가를 돌보는 경험의 긍정적 측면에 가치를 둘 수 있다. “내가 이렇게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나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느끼게 되었다. 다른 가족들도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고 감사하게 생각한다”(치매 남편을 돌보는 아내)
 
● 바쁘게 살아온 인생에서 과연 인생의 참 가치는 무엇이며 건강하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등 인생의 궁극적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이전에는 앞만 보고 돈을 벌기 위헤 열심히 살아왔지만 아내가 치매에 걸리고 나서 내가 아내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인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치매 아내를 돌보는 남편)
 
따라서, 스트레스와 부담감만이 치매가 가족에게 남기는 유일한 결과인 것으로 전제하지는 말아야 한다. 모든 상황에는 양면성이 있기 마련이다. 치매가 환자와 가족에게 줄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만 집중하지 말고 긍정적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한다면 적극적으로 치매에 대처하고 가족의 희망과 행복을 찾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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